금융권과 재계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자산 규모는 지난해 11월 말 현재 387조 4000억원으로 GPIF(일본 공적연금), GPFG(노르웨이 글로벌펀드연금), ABP(네덜란드 공적연금)에 이어 세계 4위다.
이 가운데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한 돈만 70조원에 이른다. 막강한 자금력을 무기로 금융시장과 주총 장에서 입김을 과시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9% 이상 갖고 있는 기업 수는 지난해 11월 말 현재 삼성엔지니어링 등 67개다. 1년 전에 40개였던 것이 67%나 늘었다.
5% 이상 지분을 가진 기업도 2011년 말 174개에서 1년 새 222개로 늘었다. 통상 지분율이 10%를 넘어서면 주요 주주로 분류되기 때문에 국민연금은 10%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발표한 ‘10대 그룹 상장사에 대한 국민연금 주식 보유 현황’에 따르면 10대 그룹 상장사 중 국민연금이 실질적인 최대 주주인 곳은 4곳이나 된다.
삼성물산 9.68%, 호텔신라 9.48%, 제일모직 9.80%, 포스코 5.94%이다.
국민연금이 2대 주주인 곳은 삼성전자(7%), 현대차(6.75%), SK하이닉스(9.10%), SKC(9.48%) 등이다.
하나금융(9.35%), KB금융(8.24%), 신한금융(7.34%), 우리금융(4.04%) 등 4대 금융지주에도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 국민연금이 맘만 먹으면 이들 기업의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 예로 포스코의 경우 지난해 3월 주총에 올리려던 정관 변경안을 자진 철회한 것이다. 당시 지분 6.44%를 갖고 있는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부정적 기류의 포착 때문.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지기 전에 미리 ‘선수’를 친 셈이다.
포스코처럼 지분이 분산돼 있는 상장사는 주주 권익을 앞세운 국민연금의 의견을 거부할 수 없다.
상장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대림산업의 경우 국민연금과 외국인 지분율을 합하면 오너 대주주 지분율의 두 배에 가깝다.
이 때문에 대림산업도 포스코처럼 주총 전에 국민연금이 반대하는 안건을 철회했다.
박 당선인 ‘경제 민주화’로 가세
국민연금이 금융시장에 투자규모나 소유 지분율이 높다 보니 시장에 대한 책임과 관심이 높아졌다는 반증일 수 있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것’이여서 책임성이 큰 게 사실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부터 주주로서의 권리 행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의결권을 행사한 2565건 중 반대표를 던진 안건이 436건(17%)이나 된다.
2010년 8%, 2011년 7% 등과 비교하면 반대 비중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주로 정관 변경이나 임원 선임 등 경영 현안에 관해 제동을 걸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경제 민주화를 위해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겠다”는 발언 후 국민연금의 입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국내 재벌 그룹은 상당수가 순환출자 등으로 얽혀 있고 경영권 승계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국민연금이 주주 권리를 내세우기 시작하면 그룹 지배구조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고충도 있다.
어찌됐든 국민연금은 현재 ‘감시’의 순기능과 함께 기업의 전문성 파악 등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소리도 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민연금의 반대표 행사가 실제 안건 부결로 이어진 사례는 한섬, 삼천리, 키움증권 등 3건이다. 아무튼 안건 부결까지 끌어내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기업의 투명성을 끌어올린 순기능이 크다.
기업들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기준을 미리 공부해 경영에 반영하는 시대가 됐다.
<김성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