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21부(재판장 최승록)는 지난 17일 포휴먼 대표 이모(51)씨 등과 삼일회계법인에 대해 투자자에게 384억원을 지급하고 이중삼일 회계법인은 14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최근 동양사태와 관련해 부실회계감사에 대해 금융당국이 칼을 빼든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포휴먼의 투자자 137명은 디젤자동차 배기가스 저감장치와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판매 업체인 포휴먼과 삼일회계법인에 대해 “삼일회계법인이 작성한 감사보고서를 보고 투자했다가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포휴먼은 결국 지난2011년 상장 폐지됐다.
피해투자자 측 변호사는 “5~6년을 한 회계법인이 감사를 하면서 ‘계속 속았다’는 것은 전문가로서 중대한 과책이거나 나아가서는 봐주기식 감사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 가운데 삼일회계법인 측은 “서류가 완벽했고 완벽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의심하며 감사를 진행할 수는 없다”고 반박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러한 가운데 투자피해자 측은 “조작된 서류에 속아 제대로 된 회계감사를 하지 못한다면 회계법인의 존재 가치가 낮아지는 것”이라며 부실감사를 인정하고 배상으로 책임을 지라는 강력한 입장이다.
그러나 삼일회계법인 “회계감사를 진행하는데 완벽한 자료를 제출한 상황에서 하나하나 의심을 가지고 감사를 진행한다면 회사는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며 “5~6년 감사를 하더라도 실제로 보는 건 일 년에 네 번 뿐이기 때문에 실제 같이 일한 시간은 열흘 내외이며 마음먹고 속인다면 알아내기 어렵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양측이 팽팽한 주장을 보이고 있다.
“완벽한 사기극”
우선 삼일회계법인 측은 실수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포휴먼의 조직적이고 완벽한 사기극에 속았다는 것이다. 삼일 측에 따르면 지난 2012년 3월 삼일소속 회계사 곽모씨는 포휴먼 대표 이모씨와 실사를 위해 일본 현지 자회사로 떠났다고 한다.
포휴먼 계열사의 장부상에는 일본자회사인 포휴먼재팬에 자동차 매연 저감장치 680억 원어치를 팔았다고 적혀있었지만 채권회수가 오랫동안 지연됐다는 것.
이에 삼일 측은 포휴먼재팬이 매연저감장치를 최종적으로 납품하는 신명화 오토엔지니어링 본사를 방문해 허위 매출 여부를 확인하기로 한 것이다.
곽씨가 안내받은 건물에는 신명화 오토엔지니어링간판이 걸려있었고 건물주소도 포휴먼 측에서 받은 것과 일치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
신명화오토엔지니어링 소속의 일본인까지 만나 그에게 납품이 실제 이뤄졌다는 설명도 들었다. 하지만 확인 결과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며 일본에서 만난 직원은 포휴먼재팬의 일본인 고문이었고, 간판과 명함도 모두 급조된 것으로 포휴먼이 의도적으로 속이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삼일회계법인 측은 또 포휴먼이 철저하게 준비를 해 2008년부터 3년 동안 164억 원 적자를 냈으면서도 414억 원 흑자를 낸 것처럼 꾸몄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과는 달리 “회사 측의 조직적 공모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바로잡아야 할 외부 감사인이 본연의 의무를 소홀히 했으므로 30%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신명화 오토엔지니어링의 정확한 주소를 직접 파악하고, 피고 이씨의 안내만 따를 게 아니라 합리적 의구심을 갖고 독립적으로 현지 실사를 진행했다면 허위 사업장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임에도 이런 절차를 소홀히 했다”고 판결했다.
이에 삼일회계법인 측은 “회계감사는 기본적으로 회사에서 제출한 자료는 모두 ‘사실일 것이다’를 기초로 둔다”는 것이다. 포휴먼 측에서 제출한 자료와 일본에서의 실사과정 역시 사실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으며 감사를 착실하게 진행했고 감사 과정 상 취할 수 있는 모든것을 취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피해자 측은 “포휴먼이 사기를 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밝혀내는 것이 회계법인의 역할이며 밝혀내지 못한 데에 책임을 져야한다”며 팽팽하게 맞섰다.
또한 “회계감사의 목적은 투자자가 회사에 관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지 보고서 제출이 목적이 아니며 인력과 시간이 모자라서 정밀한 감사를 진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앞으로도 부실감사 가능성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배상판결 예견된 일”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번 부실 감사 배상판결은 예견된 일이었다는 평가를 한다.
감사인과 회사 간에는 ‘갑을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부실감사의 원인으로 감사의 독립성 훼손을 지적한다. 회계법인이 기업으로부터 수임료를 받고 감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라 투명성이 결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일회계법인 측은 “책임이 없기 때문에, 충실하게 감사업무를 진행했고 오히려 사기당한사람에게 처벌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피해자 측은 “전문가로서 부실감사를 행한 것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은 것은 모든 잘못을 회사 측에 떠넘기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항변이다.
사실 부실감사 논란은 여러 차례 불거진 바 있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그룹 계열사에 대해 삼일·삼정·한영 등 담당 회계법인이 모두 ‘적정의견’을 내 부실감사 논란이 일었던 게 그것이다.
이번 부실감사의 가장 큰 피해자는 소액투자자로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기 위해 감사보고서를 참고하는 소액투자자들이 부실한 감사로 인해 잘못된 투자를 할 수 있다는 데서 문제가 야기된 것이다. 따라서 회계감사만 믿고 투자한 소액투자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삼일 회계법인 측은 “과연 그들이 감사보고서만 보고 투자를 했을까 의문이고 감사인의 감사의견은 회사의 재무제표가 회계기준에 따라 작성됐는지 여부에 대한 의견일 뿐이므로 회사 재무건전성이나 경영성과의 좋고 나쁨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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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의견을 받은 회사의 경우 당해 회사의 재무건전성이나 경영성과가 양호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피해투자자측은 “감사보고서만 보고 투자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투자를 결정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 금융당국은 회계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상장기업과 회계법인, 대학교수 등을 대상으로 회계투명성 등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등 회계부정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금융당국이 사상 처음으로 모든 상장회사 및 회계법인을 대상으로 회계감사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한 상태다.
최근 중국기업 고섬과 삼일회계법인 등이 관련된 회계부정 사건이 잇따라 터짐에 따라 회계감사 전반을 재점검 이 결과를 바탕으로 문제가 심각한 곳에 대해 감리에 들어가, 회계감사 제도의 개선이나 일부 회계법인에 대한 감리 등이 진행될 전망이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한 공인회계사는 “감사를 정밀하게 진행하기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점도 있다.
국내 기업의 경우 12월 결산법인이 대부분이라 3월말까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회계법인의 감사 관련 일감은 연초에 몰려 있다”며 나름대로 시간에 쫓기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이어 이 회계사는 “회사에서 주는 서류에 의존해 감사를 하다 보니 100% 완벽한 감사는 어려운 게 사실이고, 나아가 서류 감사의 한계를 갖는다. 특히 회계법인 간 경쟁이 가열되면서 감사 수임료가 낮아지고 감사 품질저하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게 솔직한 심경”이라고 전했다.
지난 9월 세계경제포럼(WEF)이 평가한 한국의 회계투명성 순위는 지난해보다 16계단 떨어진 91위에 그친 가운데 국내 최대 회계법인의 부실감사 논란이 앞으로 어떤 모양으로 금융당국과 업계에 영향을 미칠지 두고 볼 일이다. <이영주 기자>